〈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ㆍ동아투위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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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인 지난 26일 밤 청와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서울 대학로의 국립국제교육원 내 한 건물 사무실에서 진기한 상황이 벌어졌다. 새정치민주연합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특위’ 위원장인 도종환을 비롯한 동료 의원들과 취재진이 전격적으로 어떤 ‘비밀작전팀’(교육부의 태스크포스팀)을 ‘급습’한 것이 발단이었다. 그날 오후 도종환은 특위가 입수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티에프(T/F) 구성·운영계획(안)’을 공개했다. 정부가 국정화를 위해 교육부 안의 담당팀과 별도로 태스크포스팀을 운영해 왔으며, 그 팀의 운영계획안에는 ‘청와대 일일 점검 회의 지원 업무’가 포함되어 있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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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에 잡힌 ‘BH(청와대)’ 폴더

도종환이 공개한 ‘TF 구성·운영 계획안’에 따르면 그 조직은 단장 1명과 기획팀 10명, 상황관리팀 5명, 홍보팀 5명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지난 9월 말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교육부장관 황우여가 10월 8일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확정되지 않았다”고 발언한 것은 ‘위증’임이 명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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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팀 사무실에서는 일요일인데도 여러 명이 출근해서 보고서 등을 작성하고 있는 모습이 창문을 통해 보였다. 국회의원들과 취재진이 문을 열어달라고 하자 갑자기 불이 꺼지고, 얼마 뒤 ‘시설 경비’를 이유로 경찰이 출동했다. 바로 그 이전에 전등이 켜져 있는 상태에서 독립매체 <뉴스타파> 카메라가 사무실 안의 컴퓨터 화면을 촬영했는데, ‘BH’라는 폴더가 선명하게 나타나 있었다.

‘올바른 한국사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청와대에 ‘일일 보고’까지 하는 조직이라면 무엇이 두려워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과 언론인들의 현장 방문과 취재를 거부하고 경찰에 서둘러 신고를 했을까?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자 친박계 좌장이라는 서청원의 반응에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그는 2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자체 공무원이 제보하지 않았으면 누가 했겠나? 정당한 일하는 사람들을 아직도 자체에서 야당에 제보하는 풍토를 이번에 뿌리 뽑아야 한다”며 “외부에 노출시킨 일종의 ‘세작(細作-간첩)’과 같은 공무원을 이번에 찾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청원의 말처럼 ‘정당한 일’이라면 그것이 외부에 노출된 데 대해 ‘세작’ 색출까지 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집권세력이 ‘국정화 비밀작전’이 탄로되자 얼마나 당황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언행이다.

역사학 교수들이 4월 혁명 때처럼 거리로 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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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가 집계한 결과를 10월 26일자에 보도한 것을 보면, 지난 13일 연세대 사학과 교수들의 ‘국정화 교과서’ 집필 거부 선언 이후 70개 대학 454명의 역사학 교수들이 집필 거부 선언에 동참했다. 지난 24일에는 역사학 교수와 교사, 연구자 3백여명이 서울 서대문독립공원에서 “정부와 여당이 역사쿠데타를 자행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연 뒤 광화문까지 행진했다. 서울대 역사학과의 한 교수는 그 시위를 이렇게 평가했다. “4월 혁명 때 역사학 교수들이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며 전면에 나섰다. 그때보다도 역사학계의 저항이 크다고 느껴진다. 보수 성향 교수들까지 나서서 이렇게 많은 교수들이 한 목소리를 낸 적이 없다.”

1960년 4월, 이승만 독재정권이 민주화를 외치는 학생과 시민을 무차별 살상하자 그 달 25일 오후 5시 30분, 여러 대학 교수 258명은 동숭동의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이승만의 ‘대통령직 하야’를 요구하는 시국선언문을 채택한 뒤 “3·15 부정선거를 규탄한다”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등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그들이 종로 4가를 지날 무렵 학생과 시민 7천~8천명이 뒤를 따랐고 국회의사당(현재 서울시 의회)에 도착했을 때는 대열이 4만~5만명으로 불어났다. ‘4·25 교수 데모’는 이승만의 ‘항복선언’을 받아내는 데 결정적 작용을 했다.

박근혜와 김무성이 연출하는 ‘처량한 코미디’ 시리즈

지난 22일 박근혜의 초청으로 청와대에서 5자 회동이 열렸다.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문재인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중단’을 요구하자 박근혜는 “국민 통합을 위한 올바르고 자랑스러운 역사 교과서가 필요하다며”며 그 요구를 거부했다. 도종환이 공개한 ‘TF 구성·운영 계획안’에 따르면 박근혜는 이미 그보다 오래 전부터 국정화 작업에 관한 일일보고를 받고 있었을 것이다. 들키면 큰 사단이라도 벌어질 듯한 ‘비밀작전’을 통해 어떻게 ‘올바르고 자랑스러운 역사 교과서’를 만들 수 있단 말인가? 박근혜는 5자 회동에서 ‘처량한 코미디’ 한 편을 보여주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이종걸이 “당 대변인이 배석하지 못했으니 휴대전화로 대화를 녹음해도 되겠느냐”고 양해를 구하자 박근혜는 ‘단호하게’ 말했다. “청와대에서 그런 거 하시면 안 됩니다. 청와대를 뭘로 알고 그러세요. 여기가 법정인 줄 아세요?” 5자 회동에서 나온 이야기들이 국가기밀도 아닌데 박근혜는 마치 봉건왕조 시대 구중궁궐에서 내시들에 에워싸여 살던 임금 같은 소리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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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정화를 계기로 박근혜의 충실한 조역이 되어 새삼 두드러진 ‘활약’을 하고 있는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의 ‘처량한 코미디’도 보고 듣는 이들의 실소를 자아낸다. 그는 지난 22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좌편향 한국사 교과서 바로 세우기 국민대회’에서 “역대 대통령 중 박근혜 대통령만큼 깨끗하고 개혁적인 사고로 밤낮을 자지 않고 대한민국 역사 발전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대통령을 본 적이 있느냐”고 청중에게 물었다.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박정희도 김대중도 노무현도 박근혜처럼 ‘깨끗하고 개혁적인 사고’를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박근혜가 왜 그렇게 ‘위대한 대통령’인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면 찬반 토론이라도 할 수 있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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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은 지금 제동장치도 없이 험한 비탈길을 달려 내려가는 자전거나 다름없다. ‘노동 개혁’이라는 이름의 ‘노동 재앙’, ‘집단적 자위권’을 빌미 삼아 한반도에 군대를 보내려는 아베 정권의 노골적인 공작에 대한 속수무책, 한국형전투기개발사업(K-FX)에서 미국 정부에게 철저히 놀림감이 된 사실을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한참이나 모르고 지낸 사실 따위가 그 ‘자전거’를 벼랑 밑으로 떨어뜨리려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무성 말고 그 누가 박근혜를 ‘깨끗하고 개혁적인 사고를 가진 대통령’으로 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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