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에서 현장음이 자동 재생됩니다.

마천행 5호선 열차가 공덕역에 정차했다. 객실에 물결 같은 승객이 탑승했다. 평일 출근 시간 이야기가 아니다. 2016년 11월 12일 토요일 오후 광화문으로 향하는 전철은 정거장에 정차할 때마다 다양한 승객을 빨아들였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좁은 공간에 살을 비비며 서 있어도 불쾌감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무언의 표정과 눈빛으로 인사를 하기도 했다.

서대문역에 다가서자 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객실 끝에서 들렸다.

시민들은 촛불을 밝혔다. ©오케이빌드
시민들은 촛불을 밝혔다. ©오케이빌드

“자 여러분 우리 예행연습 한번 해봅시다. 박근혜는!!”

마치 메아리처럼 객실의 또 다른 끝에서 “하야하라!”는 두 세 명의 외침이 들렸다.

전철을 꼼꼼히 메운 승객에 비해선 싱거운 외침이었다.

광화문 정거장에 도착한 전철 문이 열리자 승객들은 감탄사를 뱉으며, 쏟아져나왔다. 광화문역은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인파가 모여 있었고 이들은 마치 진공청소기가 빨아들이기나 한 듯 모두 광화문 광장으로 향했다.

커플, 가족, 지방에서 상경한 농민, 노동조합 조합원들과 정치정당 당원들을 비롯해 광장에 서 있는 시민의 연령과 성별은 다양했다. 최순실은 권력을 사유화했다. 대통령이 묵인을 넘어 동조했는지 아니면 최순실에게 이용당했는지 정확한 관계를 지금 확인하긴 어렵다.

그러나 사건의 경위가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시민은 분노했다. 선거로 선출된 권력이 아닌 실체도 알기 힘들어 비선실세라고 불리는 최순실 일당이 몇 년간 권력을 떡 주무르듯 한 행동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테러를 저지른 사건이나 다름없었다. 대통령은 두 번의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한번은 녹화방송 두 번째는 생방송. 그러나 기자의 질문을 받지 않았고 모호한 담화문은 국민에 대한 존중이나 배려는 보이지 않았다.

그 결과 11월 12일 시민 백만 명이 광장으로 나왔다. 시청, 광화문, 대학로, 서울역, 종각 어디라고 말할 곳도 없이 ‘박근혜 하야’ 구호가 외쳤다.

청와대로 가는 길목인 경복궁역 내자동 사거리는 이른 시간부터 경찰이 차벽을 치고 시민을 통제했다. 내자동에 사는 동민은 집으로 가기 위해 전경 버스 아래로 기어가야 하는 수모도 겪어야 했다.

날이 어두워졌다. 내자동에도 촛불이 커졌다.

태극기를 꺼내 든 시민도 있었다. ©오케이빌드
태극기를 꺼내 든 시민도 있었다. ©오케이빌드

“저는 6월 항쟁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젊음은 사라졌지만, 이 자리에 다시 나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엔 6월 항쟁보다 시민이 더 많이 나온 거 같습니다!”

등산복 차림의 중년 남성이 외쳤다. 순간 내자동 사거리는 함성과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놀라운 광경을 인파는 스마트폰으로 남겼다. 카카오톡 단체방에 올려 함께 하지 못한 이들과 공유했다. 셀카를 찍는 여학생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비장함보다는 생생하고 발랄함이 광화문 일대의 공기를 뒤덮었다. 그러나 세월호 유가족 모습이 보일 때 백남기 농민을 이야기 할 때 시민이 발언대에 올라 자신의 의견을 외칠 때 눈시울이 붉어지는 사람이 많았다. 이날 시민의 분노는 뜨겁고 당장 터질 거 같은 달아오른 증기기관이 아니라 냉철하게 식고 식어 차가워진 쇳덩이 같은 분노였다.

밤이 찾아올수록 집회 규모는 부쩍 늘었다. 규모에 비례해 시민은 질서 있는 모습을 보였다. 집회 선두에 한 여성이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자 시민들은 길을 터주고 그녀를 들어 신속하게 옮겼다. 마스크를 낀 중년 남성이 전경 방패를 붙잡고 당기자 주변에 있던 시민은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성을 말리며 흥분하지 말라고 다독였다.

전경을 위로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오케이빌드
전경을 위로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오케이빌드

“제 아들도 지금 전경으로 가 있습니다. 지금 이게 전경 잘못은 아니잖아요”

폭력집회로 번질 수 있는 순간이 무마됐다. 새벽이 다가오면서 몇 번의 크고 작은 충돌과 사건들이 생겼다. 백만 명이 모인 공간 거기에 분노가 더해진 시간에 이 정도 충돌은 이전 집회와 비교해봐도 놀라운 수준이다.

대통령과 최순실 모든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 비하성 발언들이 간혹 터져 나왔다. 집행부와 시민들은 분노한 심정은 알지만, 여성 비하 발언은 삼가달라는 이야기를 했다. 다양성과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독보이던 순간이었다.

언론은 ‘평화 집회’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쏟아냈다. 경찰의 물대포 살포도 없었다.

공식 집회가 끝나고 여운을 남기며 발걸음을 돌렸다. 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 시민들이 보였다. 그들이 평화 집회의 마침표를 찍었다. 변화를 원하는 분노한 시민이면서 동시에 법의 테두리를 잘 지키는 시민이었다. 광장에 나온 백만 명 시민 대다수가 그랬다. 평화롭게 법이 허용한 분노까지만 터트리고 돌아가는 발걸음.

시민들은 휴대폰의 플레쉬로 조명을 만들어 민심을 밝혔다. ©오케이빌드
시민들은 휴대폰의 플레쉬로 조명을 만들어 민심을 밝혔다. ©오케이빌드

세상을 바꿀 거 같은 열기가 광화문을 뒤덮었지만, 변한 건 없었다. 분노의 원인을 보지도 못하고 변화의 시작을 제대로 느끼지도 못했다. 백만 명이라는 숫자는 경찰의 차벽을 충분히 무너트릴 수 있는 숫자다.

그러나 군중은 그 방법을 뒷순위로 미루고 집으로 돌아갔다. 허전하고 울먹이는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들어 이날 찍은 사진과 언론에서 나온 기사를 확인하고 공유했다.

집회가 끝나고 하루가 지났지만, 대통령의 직접적인 입장 표명은 없다. 여전히 변한 건 없다. 하지만 광장에서 함께한 시민들 사이에는 믿음이 싹텄다. 우리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언제라도 광장으로 다시 모일 거라는 믿음이다. 이 믿음의 토대는 사회를 진화하는 최소단위가 될 것이 분명하다.

광장에 홀로 서 있지 않을 거란 막연한 믿음으로 광화문을 나섰던 심정으로 새로운 사회를 기다려본다.

11월 12일 광화문 광장 촛불집회 사진

광화문 광장 모습 ©오케이빌드
광화문 광장 모습 ©오케이빌드
 ©오케이빌드
©오케이빌드
 ©오케이빌드
©오케이빌드
 ©오케이빌드
©오케이빌드
 ©오케이빌드
©오케이빌드
 ©오케이빌드
©오케이빌드
 ©오케이빌드
©오케이빌드
 광화문 광장에 온 수 많은 인파를 촬영하기 위해 사진 기자들은 건물 옥상에 올라가 있다. ©오케이빌드
광화문 광장에 온 수 많은 인파를 촬영하기 위해 사진 기자들은 건물 옥상에 올라가 있다. ©오케이빌드
법원은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된 기존 집회들은 지금까지 평화롭게 진행됐다. 집회 참가인들이 그동안 보여준 성숙한 시민의식 등에 비춰볼 때 평화적으로 진행될 것이라 능히 예상할 수 있다."는 전제로 처음으로 율곡로 행진을 허용했다. ©오케이빌드
법원은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된 기존 집회들은 지금까지 평화롭게 진행됐다. 집회 참가인들이 그동안 보여준 성숙한 시민의식 등에 비춰볼 때 평화적으로 진행될 것이라 능히 예상할 수 있다.”는 전제로 처음으로 율곡로 행진을 허용했다. ©오케이빌드
내자동 사거리에 차벽이 설치된 모습이다. ©오케이빌드
내자동 사거리에 차벽이 설치된 모습이다. ©오케이빌드
덕수궁역도 통제됐다. ©오케이빌드
덕수궁역도 통제됐다. ©오케이빌드
 ©오케이빌드
©오케이빌드
경찰은 이른 시간부터 내자동 사거리를 차벽으로 통제하면서 내자동으로 향하는 시민은 전경 버스 밑으로 기어 들어가야 했다. ©오케이빌드
경찰은 이른 시간부터 내자동 사거리를 차벽으로 통제하면서 내자동으로 향하는 시민은 전경 버스 밑으로 기어 들어가야 했다. ©오케이빌드
 ©오케이빌드
©오케이빌드
청와대 가는 길목인 내자동에서 시민은 자신의 의견을 외쳤다. ©오케이빌드
청와대 가는 길목인 내자동에서 시민은 자신의 의견을 외쳤다. ©오케이빌드
권력의 사유화에 많은 시민이 분노했다. ©오케이빌드
권력의 사유화에 많은 시민이 분노했다. ©오케이빌드
 ©오케이빌드
©오케이빌드
 ©오케이빌드
©오케이빌드
내자동 사거리는 경찰이 통제하면서 대치가 불가피했다. ©오케이빌드
내자동 사거리는 경찰이 통제하면서 대치가 불가피했다. ©오케이빌드
 ©오케이빌드
©오케이빌드
 내자동 사거리를 시민이 가득 채웠다. ©오케이빌드
내자동 사거리를 시민이 가득 채웠다. ©오케이빌드
광화문 일대에선 시민들이 삼사오오 모여 시국에 대해 논하기도 했다. ©오케이빌드
광화문 일대에선 시민들이 삼사오오 모여 시국에 대해 논하기도 했다. ©오케이빌드
 농민들은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대형 상여를 매고 행진 했다. ©오케이빌드
농민들은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대형 상여를 매고 행진 했다. ©오케이빌드
녹색당은 재미있는 방식으로 집회에 참여했다. ©오케이빌드
녹색당은 재미있는 방식으로 집회에 참여했다. ©오케이빌드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시민의 목소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커졌다. ©오케이빌드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시민의 목소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커졌다. ©오케이빌드
예술대 청년들도 집회에 참여했다. ©오케이빌드
예술대 청년들도 집회에 참여했다. ©오케이빌드
시민들은 박근혜 퇴진 피켓에 촛불 모왔다. ©오케이빌드
시민들은 박근혜 퇴진 피켓에 촛불 모왔다. ©오케이빌드
혐오와 차별 없는 평등 집회를 원하는 시민이 다수였다. ©오케이빌드
혐오와 차별 없는 평등 집회를 원하는 시민이 다수였다. ©오케이빌드
 ©오케이빌드
©오케이빌드
2차 집회와 마찬가지로 이번 집회도 청소년들이 대거 참여했다. ©오케이빌드
2차 집회와 마찬가지로 이번 집회도 청소년들이 대거 참여했다. ©오케이빌드

사진이 필요하시거나 관련된 문의는 [email protected] 로 이메일을 보내주세요.